어떤 아버지 그리움
이제는 몇년이 지난 일인..
시골로의 귀향 전.
서울에서
13년간 책을 둘러치고
서점을 하던 나에게는
이즈음의 신학기가 시작되면
잊혀지지 않고 오래도록 기억되는 손님이 있다.
"여그.. 사장님 계십니꺼?"
"예.. 제가.."
오전에 들어온 책들을 서가에 정리하고 있는데
중학생쯤의 학생을 데리고
비닐가방에 책을 한 보따리 들고
주춤거리며 매장안으로 들어 오는 분이 있었다.
흔히 있는 책교환 손님인가 했는데
그것만은 아닌듯 했다.
"아이구, 선상님.. 지가 자식놈 교육을 잘못시켜서..
부끄럽고 면피(面皮)가 없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뒤에 우물쭈물 서있는 학생의 등짝을 앞으로 밀치며
낮은 목소리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이놈아, 빨리 무릎끓고 선상님께 빌어."
"잘..못..했.."
며칠전 매장안의 참고서가 무더기로 분실됐음을
영업 마감시간에야 발견했었다.
그 주인공이 이렇게 쭈볏거리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한편으로는 괘씸도 했지만
후줄근한 옷차림으로 꽤나 지친듯한 모습을 한
같이오신 학부형을 보니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지가 오태날까지 비록 뇌동(노동)을 해서 먹고는 살지만
이날 입때껏 저놈의 못난 자식에게 모든 것을 걸고 살아
왔는디.."
"......"
"지가 그저께 밤부터 잠도 제대로 못자고 일도 못나가고
고민고민 하다가 이렇게 찾아 뵙게 됐습니다."
"......"
"자식놈이 저렇게 못된 행동을 했다는것을 생각하니 억장
이 무너지는게..."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닦으며
한숨만 쉬고있다가 나중에는 눈시울을 붉히셨다.
"인자는 저놈은 내자식이 아니니께, 경찰서로 넘기시든가
어떻하시더라도 모든걸 선상님의 처분에 맡기것습니다."
"......"
일요일 저녁에 사단(事端)을 알아채고
밤새도록 추궁하고 혼내주다가
어제는 일이 손에 잡힐것 같지않고해서 집에서 지내다가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그 길로
아들의 손에 책을 들려 보냈는데
늦은 밤중에야 그냥 돌아왔단다.
해서 오늘은 새벽부터 아들과 같이나와
건물앞에 앉아 문 열기만을 기다렸노라고 했다.
"오히려 제 불찰이 더 큽니다."
"......"
"제가 책 단속을 잘했으면 이런 일이 없을 터인데.."
"하이고, 이놈아.. 뭐허냐.. 얼릉 용서를 빌잖구.."
"학생, 넌 참으로 훌륭한 아버님을 두셨다."
"훌쩍!.."
"내가 너에게 백마디하는 꾸지람이나 충고보다는 너에겐
너의 아버님의 한말씀 마다에, 가슴에 꼭꼭 새겨 듣거라
그러면 너는 틀림없이 다음에 훌륭한 사람이 될것이다."
"......"
"앞으로 이런 행동은 절대하지 말거라."
"...네."
"난 훌륭한 아버지를 둔 네가 부럽다."
"선상님.. 부끄럽습니다."
"아이구, 무슨 말씀을..."
"어차피 제 자식놈이 사 써야하는 책이고 허니 허락허신다
면 값을 치르고 사가고 싶습니다만..."
"그렇게 하시지요."
세계문학 몇 권과 문제집을 덤으로 얹어
그 학생 손에 들려줬다.
그날
가슴이 뭉클한 진한 감화를 받았다.
그날 그 학생 아버님을 모시고 찻집으로 내려가 많은 얘기를 나눴다.
남보다 못한 처지와 환경에서도
아버지의 모습을 잃지 않고 굳건하게 지켜 내시는
그분 모습에서
우리 아버지들의 자화상이 어떠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읽었고
정도(正道)의 삶이 어떤것인지를
겸허한 마음으로 배웠다.
지금쯤은 30대 중반쯤의 나이가 됐을 그 학생은
분명 어디에선가
그 용기있는 어버지의 가르침으로 인해
지금쯤은
떳떳하고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해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어떤 아버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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