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야기

[스크랩] 행복의 메타포 / 안병욱

송규정 2010. 9. 4. 07:53

 

앉은뱅이꽃의 노래


괴테의 시 가운데 <앉은뱅이꽃의 노래>라는 시가 있다.


어느 날, 들에 핀 한 떨기의 조그만 앉은뱅이꽃이 양의 젖을 짜는 순진 무구한 시골 처녀의 발에 짓밟혀서 시들어 버리고 있다. 그러나 앉은뱅이꽃은 조금도 그것을 서러워하지 않는다. 추잡하고 못된 사내 녀석의 손에 무참히 꺽이지 않고 맑고 깨끗한 처녀에게 밟혔기 때문에 꽃으로 태어났던 보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시의 상징을 좋아한다. 들에 핀 조그만 꽃 한 송이에도 꽃으로서의 보람, 생명으로 태어났던 보람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보람 있는 생(生)을 원한다. 누구나 보람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보람 있는 일생을 마치고 싶어한다. 우리 인생의 희열과 행복을 주는 것은 진실로 보람이다.


화가가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려고 캔버스 앞에 설 때, 작곡가가 좋은 노래를 지으려고 전심 몰두할 때, 어머니가 자식의 성공과 장래를 위해서 밤낮으로 수고할 때, 아내가 남편을 위하여 큰 일 작은 일에 정성된 노력을 기울일 때, 우리는 삶의 보람을 느낀다. 생의 보람을 느끼기 때문에 고생이 고생으로 느껴지지 않고 기쁨으로 변한다. 인간의 생에 빛과 기쁨을 주는 것은 곧 보람이다. 보람이 크면 클수록 우리의 기쁨도 크다.


자기의 생에 보람을 못 느낄 때, 허무의 감정과 의식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내가 하는 일이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절대로 인생의 허무주의자(虛無主義者)가 될 수 없다.


행복은 만인의 원(願)이다. 행복에의 의지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의지(意志)다. 이것은 이론이 아니고 인생의 사실이다. 행복한 생을 원하거든 먼저 생의 보람을 찾아야 한다. 보람 있는 생을 살 때 꽃의 향기가 짝하듯이 행복이 저절로 따른다.


나는 행복에 관해서 생각할 때마다 위대한 철학자 칸트의 말을 언제나 연상한다. 칸트에 의하면 행복한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행복을 누리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행복을 직접 목적으로 삼지 말고 행복을 누릴 만한 자격이 있는 행동을 하고 또, 그러한 인간이 되라는 것이다. 우리는 착한 사람이 행복하고 악한 사람이 불행한 것을 볼 때 그것이 당연한 인생의 질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악한 사람이 행복하고 착한 사람이 불행한 것을 볼 때 그것은 인생의 부당한 질서라고 생각한다. 어딘지 못마땅하게 느껴진다.


이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양심(良心)의 요구다. 착한 사람이 행복을 누리는 것이 인생의 자연이요, 또 필연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우리는 그것을 믿기 때문에 이 세상에 대해서 또 인생에 정을 붙이고 살아가는 것이요, 또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악한 사람이 행복을 누리고 착한 사람이 불행해야 한다고 하면, 우리는 그런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것이야말로 지옥의 질서다. 저주받은 사회다. 그것은 인간의 사회가 아니고 악마의 나라다. 우리는 의식하건 안 하건 인생과 세계의 도덕적 질서를 굳게 믿고 살아가는 것이다.



행복이란 단어는 인생의 사정에서 가장 큰 캐피털 레터로 씌어진 말이다. 우리의 대화에 항상 오르내리고 우리의 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위치와 무게와 의미를 차지하는 단어다. 행복은 인생의 알파요, 오메가다.


서양 신화에 의하면 행복의 여신은 짓궂은 여신이다. 쫓아가면 도망한다. 냉정한 태도로 멀리하면 유혹하려고 든다. 단념하면 배후에서 사람을 조롱한다는 것이다. 행복의 여신은 이렇듯 다루기 어렵다는 것이다. 행복의 여신은 쫓기에도 안 되었고, 안 쫓기에도 안 되었다. 쫓으면 달아나고 안 쫓으면 유혹하고 단념하면 조롱한다.


너무 행복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는 편이 좋다. 행복에 개의치 않고 보람있는 인생을 살려고 애쓰고 또 인생의 보람을 위해서 정성스럽게 일하노라면 뜻밖에도 행복의 여신이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면서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행복의 길은 행복에 해당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요,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일이다.


인생의 보람을 위해서 살고, 보람 있는 인생을 사는 것이다.


보람, 이것이 행복의 중요한 열쇠가 아닐까.

출처 : 한국 가톨릭 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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